[책머리에]
어떤 마취과 의사라도 마취의 기전에 대해 알고 싶고 또 알게 된 것을 정리하고 싶을 것이다. 저자도 오랜 시간 그런 궁금증을 갖고 있던 차에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 어려웠던 점은 막상 관련 자료들을 읽기 시작했을 때, 너무나 많은 연구방법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시도되어 결과들을 통합하여 정리하기 쉽지 않았다는 것, 각각의 이론 또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부족한 내용이나마 여러 동료들 앞에 내놓는 바이니 많은 지도와 편달이 있기를 바란다. 또 문체에 있어서 매우 투박하고, 때로 일반적인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편의적인 서술을 한 점에 있어서 양해를 구한다. 부족한 가운데, 저자의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궁리하다 보니 이곳저곳에 다소 투박한 느낌이 드는 서술을 하게 되었다.
본 책은 마취의 기전을 탐구하기 위하여 역사적 발단이 된 사건들부터 시작하여, 정의 측면에서의 정리를 하였다. 정의는 의학적 문제의‘진단’과 같이 원래 여러 현상들을 연구하고 나서 귀납적으로 제시되는 것이지만 리뷰하는 책자에서는 쉽게 방향 잡기 위해서 먼저 나올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마취라는 개념을 기저 중추신경계의 기전으로 설명하는 것이 21세기 들어 치열히 연구되는 분야일 정도로 쉽지 않은 것을 생각한다면 정의 부분에서 이미 상당한 혼란과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후 마취 효과 중 대표적인 의식 소실이나, 부동성(immobility)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여러 관련 연구들을 거론하고 현재의 기전 이해수준을 서술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분자수준의 표적 물질들에 연구들과 주요 연구 방법들에 대한 내용을 묶어서 기술하는 순서를 취하였다. 보통 기초적인 연구방법이나, 표적 물질 별로 먼저 내용을 소개하고, 다음으로 어떤 효과 같은 큰 주제를 종합적으로 서술하는 경우가 많지만, 순서를 바꾸어 서술하는 것도 종합적 시각을 먼저 보여주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마취 효과 중 진통(analgesia)이나 진정(sedation)에 대해서도 별도로 여러 연구들을 종합하여 설명할 필요가 있겠으나 저자의 준비가 충분하지 못하여, 본서에는 담지 못하였다. 다음 기회가 있으면 넣고자 한다. 매우 부족한 내용들이지만, 그래도 어떤 주제이던지 본 저서와 같은 방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되며, 참고할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어떤 수준의 연구이든지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분야에서 얻어진 지식을 참고하여새롭게 조합되고, 재창조적인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므로, 어떤 연구도 사실 서술하기 시작하면 결국 미시적 수준에서 거시적 수준까지 언급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구분 없이 너무 길게 내용이 이어지면 읽는 사람 입장에서 힘들 수 있으므로, 나누어 서술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서술하는 사람이 주의할 점은, 여러 장으로 나누고자 한다면 좀 더 매끄럽게 넘어가도록 서술에 있어서 연결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마취 기전을 설명하려면, 미세한 분자수준의 표적물질부터, 거시적인 수준인 신경회로계까지 서로 구슬이 한 줄로 꿰이듯 연결되는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책을 준비하면서 단백질 표적들의 역할이나 시상 같은 중추신경 조직의 역할 등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연구자마다 종합적인 평가가 다른 경우들이 있었고, 그 내용들을 저서속에 기술하였다. 이들에 대해 미래에 어떻게 내용을 조화시켜 나갈지 주목하여 살필 필요
가 있을 것이다.
본 책의 궁극적 주제를 다시 한 번 얘기하자면 마취란 무엇이며, 그 기전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마취는 다양한 효과들의 복합 상태이며 그 기전은 명확하게 설명하기에는 아직 너무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 중요한 이유로서는 마취라는 말 속에 포함된 효과들의 발생 장소로 여겨지는 중추신경계의 정상적 작용 방식에 대해 연구하기 어렵고 이해가 덜 되어 있는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점이 마취 약제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여 나타내는 효과들이 어떤 부분에서의 어떤 기전을 통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게 하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이런 이유로 원하는 마취 효과만을 순도 높게 달성하면서, 부작용은 갖지 않는 약제들을 개발하는 최고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아직 뚜렷한 전망은 없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이제까지의 많은 미시적, 거시적 연구들이 가진 특장점을 종합하여 보다 나은 연구들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그 동향을 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혹자는 이처럼 기전적 이해가 미비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그 수많은 마취를 날마다 실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서양의학의 많은 영역이 그렇듯이, 어떤 질환이나 치료 약제 등의 근본 기전은 잘 몰라도 실제 활용하는 임상 영역에서 얻고자 하는 효과는 얻되, 주의하여야 할 부작용들에 대해서는 최소화하는 대안 마련과 조기 발견을 하려는 감시활동 같은 임상의학의 발달에 있다고 생각된다.
임상의학은 나아가 여러 기전 연구에서 얻어진 지식을 받아들여 그 진단 혹은 치료의 영역에 도입하려는 시도를 쉬지 않고 하고 있다.
마취라는 현상은 의식이나 기억 같은 중요 중추신경계 기능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므로 21세기에 많은 연구가 되고 있는 뇌과학에 상호 발전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마취 관련 전공자 외에도 여러 뇌과학 분야에서 연구하는 분들에게도 약간의 도움이 되고 상호 정보의 교류를 하는 기회가 되면 더 없는 보람으로 여기고 싶다.
[저자소개]
강봉진
1989년 서울의대 졸업
1994년 서울대학병원 마취통증의학과 레지던트 이수
1995년 이후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
2004년 미국 버지니아 대학 약리학 교실 연수
구분 | 13시 이전 | 13시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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