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제목이 이상하다. <돼지책>이라…….
돼지가 주인공인 책인가? 하지만 표지 그림에 그려진 건 돼지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런데 표지 그림도 이상하다. 보는 순간 숨을 몰아쉬게 된다.
"어휴, 정말 무겁겠다!"
한 여자가 자기보다 덩치 큰 남자와 사내 아이 둘까지 해서 셋을 업고 있다. 가냘파 보이는 여자가 남자 셋의 무게를 한꺼번에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힘겨워 보이는 여자와 아무 생각 없이 활짝 웃고 있는 남자 셋. 조금 알 것 같기도 한데…….
<돼지책>은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진지한 주제와 재미있는 그림이 절묘하게 결합된 앤서니 브라운의 명작
표지 그림에서 언뜻 눈치챌 수 있었겠지만 <돼지책>은 가정 내에서 여성이 혼자서 짊어지고 있는 가사노동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이책에서는 보기 드물게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여성 문제와 가족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자칫 어린이책에서 표현하기 무겁게 느껴지는 주제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작가 앤서니 브라운은 군더더기 없고 유머러스한 글, 치밀하게 계산되어 볼거리가 풍성한 그림과 화면 구성으로 진지한 주제를 설득력 있고 쉽게 전달하고 있다. 게다가 글과 그림에서 물씬 풍기는 유머와 위트는 그림책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 줘 정말 완벽하게 매력적인 그림책이라 할 만하다.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그림책 작가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앤서니 브라운은 작품의 내용과 그림에 있어 초현실주의적인 기법을 즐겨 사용한다. 이런 그의 방식은 그가 말하고자하는, 때로는 무겁고 진지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풍자나 역설을 그림책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기발한 상상력과 갖가지 즐거운 그림 요소로 절묘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돼지책> 역시 그의 이런 능력이 십분 발휘된 절묘하고 탁월한 작품이다.
그럼 <돼지책>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인지 작품 속으로 좀더 들어가 보자.
집안일은 당연히 여자가 해야 한다?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요된 희생
표지 그림에서 보았던 한 여자와 세 남자는 피곳 씨 가족이다. '아주 중요한 회사'에 다니는 피곳 씨와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은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늘 입을 크게 벌리고 아내에게, 엄마에게 빨리 밥을 달라고 요구하기만 한다.
모든 집안일은 피곳 부인 혼자의 몫이다. 피곳 부인 역시 직장에 나가지만 가족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지 출근을 하기 전에도, 퇴근을 하고 나서도 집안일을 모두 혼자해야 한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 표지 그림은 여성에게만 부과된 가사 노동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집안일은 당연히 여자의 일이라는 생각, 그래서 그 가치를 인정하기는커녕 누구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 잘못된 고정관념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에 가사 노동의 책임이라는 항목을 당연한 듯 집어넣고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 결국 견딜 수 없었던 피곳 부인은 쪽지 한 장을 남기고 집을 나가 버린다.
"너희들은 돼지야."
아내, 엄마의 부재 - 돼지가 되어버린 세 남자
이제 피곳 부인은 집에 없다. 늘 그렇게, 당연히 집안일을 해 주어야 할 아내, 엄마의 부재.
매일 밥을 달라고 소리치기만 했던 피곳 씨와 두 아들은 직접 요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말 그대로 '끔찍한' 식사였다. 무엇하나 집에서 자기들 힘으로 해본 것이 없으니 잘 될 리가 없다. 게다가 그들은 배가 고프니까 해 먹기는 하지만 절대 치우지는 않는다.
그러는 사이 집은 점점 더 돼지우리처럼 변해가고 피곳 씨와 아이들도 이상하게 변한다. 결국 먹을 것도 떨어지자 세 남자는 꿀꿀거리며 기어서 집안을 뒤지기 시작한다. "음식찌꺼기라도 찾아야 해."하면서. 어느 새 돼지가 되어버린 세 남자.
당연한 듯, 관심 없이 무책임하게 생각했던 집안일을 해 주는 사람이 사라지자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결국 무기력하게 돼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한 사람으로서, 하나의 가정이라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소중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일원으로서 가정의 일에 무책임하게 그 역할을 방기했던 세 사람은 이제 돼지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해 보지 않으면 무심히 지나치기 쉬워 그 소중한 가치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가사 노동은 가족이라는 소중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도리를 다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항목이다. 그렇지 않으면 돼지와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가족의 의미, 행복한 가정의 필요 조건 - 함께 하는 즐거움
돼지가 되어 음식 찌꺼기를 찾으러 바닥을 헤매고 있는 피곳 씨와 두 아들 앞에 피곳 부인이 나타난다. 그들은 애원한다.
"제발, 돌아와 주세요."
그래서 피곳 부인은 집에 있기로 한다. 그리고 이제 피곳 씨와 두 아들은 달라졌다.
설거지, 침대 정리와 다림질을 하고 요리를 도와주면서 그것을 무척 재미있어하며 즐기기까지 한다. 피곳 부인도 차를 수리하며 행복해한다. 책 전체를 통틀어 처음으로 정면을 보며 웃는 얼굴이다.
결국 소중한 가족의 의미,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의 힘겨운 희생만으로 어느 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가정이 아니라, 화목하고 안락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위해 조금씩 양보하고, 기꺼이 직접 시간과 힘을 들여 몸을 움직이는 노력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것이 앤서니 브라운이 제시하는 행복해지는 비결인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결말에 대해 의의를 제기하는 페미니스트도 있다고 한다. 엄마가 차를 수리하는 것은 집 안에서의 단순한 일에서 집 밖에서의 조금 복잡한 일로의 전환이며, 흔히 남자의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엄마가 하는 것이 가정 내 여성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고 오히려 성 역할 고정화에 대한 진지하지 못한 접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앤서니 브라운이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누구 한 사람에게만 당연한 듯 부과된 가사 노동을 가족 성원 모두가 나눠서 함께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각자가 좋아하는 일을 서로 나누어 함께 해 나가며 즐거워하고 가사 노동의 가치를 느낄 때 모두가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피곳 부인이 차를 수리하건, 다시 설거지를 하건 그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피곳 씨네 가족이 '아주 중요한' 가사 노동을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행복해진 피곳 씨의 가정을 보며 아이들은 당연한 듯 여겨왔던 엄마의 일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될 것이며, 가정 내에서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맡아 서로 도와가며 생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배우게 될 것이다.
보고 또 보게 만드는 완벽한 화면 구성
<돼지책>이 <돼지책>인 것은 내용이 담고 있는 함축성에서도 기인하지만 그림책으로서 그 그림이 보여주는 다양한 장치와 기발한 상상력에 의탁하는 점도 클 것이다. 이 책에는 정말 구석구석 돼지가 가득하다. 말 그대로 <돼지책>일 수밖에 없다.
피곳 부인이 집을 나간 뒤, 급기야 돼지가 되어버리는 피곳 씨와 두 아들을 제외하고서라도 그 이전에 서서히 조금씩 화면을 장악하기 시작하는 돼지들을 찾아내는 재미야말로 이 책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보면 볼수록 책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어 몇 번이고 꼼꼼하게 뜯어보게 하며, 그렇게 여러 번을 봐도 지겹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즐거움을 줘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것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앤서니 브라운의 초현실주의적인 기법과 맞닿아 있다. 앤서니 브라운은 <돼지책>에서 그림을 보고 또 보게 만드는 장치로 화면 속에 숨겨진 그림을 찾게 한다거나 같은 요소가 조금씩 변화해 가는 것을 보여 주고, 사람의 모습을 동물로 바꾸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맨 처음 식탁 위에 놓인 시리얼 상자에 조그맣게 등장하는 돼지 얼굴부터 시작해 피곳 씨가 읽고 있는 신문, 저금통, 단추, 문손잡이, 꽃병, 양념통 등 어떤 물건에 돼지가 어떻게 그려졌는지 유심히 살피며 책을 보자. 볼 때마다 새로운 돼지 얼굴을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을 준다.
또 피곳 부인이 집을 나가자 벽난로 위에 걸린 그림에서 여자가 실루엣만 남기고 하얗게 사라지고, 벽지 무늬도 돼지 얼굴이 되며, 거실에 걸린 초상화의 얼굴도 돼지로 변하는 등 상황이 전개되면서 변화되는 요소들도 기발하다.
뿐만 아니라 피곳 부인이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장면은 무겁고 침침한 황갈색 톤에 화면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답답하게 느껴지는 사각형으로 배치한다거나, 돼지우리가 되어버린 우울한 푸른색의 집에 밝은 미색을 넣어 피곳 부인이 다시 등장하는 장면을 강조한 것 등 색채나 구도에 있어서도 치밀하게 계산된 완벽함이 느껴져 또 한번 감탄하게 만든다.
이렇게 완벽한 화면 구성은 그림을 구석구석 꼼꼼하게 뜯어보는 아이들에게 더없는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고 글의 내용과 분위기를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초현실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한 장치를 사용해 그림책 보는 재미를 더해 주고 오래 두고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그림으로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앤서니 브라운 작품의 특징이다.
구분 | 13시 이전 | 13시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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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도서 | 당일출고 | 1일 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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