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기원 100년 전에 만들어진 동양경전인 예기(禮記)에 국가의 경영에 대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구 년간의 비축이 없으면 부족이라 하고 육 년간의 비축이 없으면 급(急)이라 한다. 삼 년간의 비축이 없으면 나라이긴 하지만 옳은 나라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인들이 재난의학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0년대부터인 것 같습니다. 열차전복, 비행기추락, 다리붕괴, 건물붕괴 등 산업화된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인위재난의 모든 유형을 단 사오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겪으면서 준비된 재난의료대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유난히 집중적으로 발생한 자연재난으로 연 122명의 사망 또는 실종되었는데 이 또한 산업화, 도시화가 중요한 원인이었습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위재난이 증가하고 자연재난과 인위재난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법과 제도에 대한 재정립의 필요성은 물론 학문적으로도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해 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세계화와 더불어 외국에서 발생한 재난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되면서 국제표준에 맞는 재난의료대책도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남아시아의 쓰나미, 미국의 카트리나 등을 겪으면서 재난대책에 있어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던 미국에서조차도 새로운 재난대책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지난 2008년 11월엔 제9회 아시아태평양 재난의학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렸습니다. 새로운 자연환경과 점점 다양해지는 재난에 대비한 재난의료대책에 관해 세계 각국 재난 전문가들의 열띤 토론이 있었습니다. 이번 편집에서는 전통적인 재난의학에 대한 견해를 유지하면서 최근 논의된 새로운 국제 표준을 담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중국은 쓰촨성 재난을 겪으면서 “조사연구가 없으면 발언권이 없다”는 격언을 얻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어느 나라 못지않은 경험을 겪었지만 국가차원의 조사연구 제도를 갖추지 못한 현실의 안타까움을 다시 한 번 절감하였습니다.
3년은 고사하고 당장의 재난대책마저 부실한 우리나라 형편에서 이 책의 출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편집에 참여하신 분들의 노력이 올바른 재난의료대책 마련과 국가차원의 조사 연구 제도의 추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재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물론 예방입니다. 하지만 의료계나 구조, 구급업무를 담당한 조직의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어쩔 수 없는 재난발생에 대한 준비입니다. 이 책이 재난에 대비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저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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